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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주식시장 (공포장, 밸류에이션, 중장기투자)

by respring2260 2026. 4. 19.

전쟁이 터지면 주식시장은 반드시 폭락한다는 공식, 저는 911 테러를 직접 눈으로 보면서 그게 얼마나 잔인하게 들어맞는지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진실이 있습니다. 그 폭락 이후에 시장은 결국 다시 올랐고, 그 공포 속에서 버틴 사람이 이겼다는 사실입니다.

공포장의 기억, 그리고 역사가 반복하는 것

2001년 9월 11일, 저는 막 취업을 하고 월급을 모으기 시작한 초년생이었습니다. TV 속보로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지는 장면을 보는 순간, 솔직히 주식이고 뭐고 머릿속이 새하얘졌습니다. 직접 투자를 하고 있던 건 아니었지만, 주변에서 서킷브레이커가 연달아 발동됐다는 얘기가 들려왔습니다.

여기서 서킷브레이커(Circuit Breaker)란, 주가 지수가 일정 수준 이상 급락했을 때 매매를 일시 중단시키는 제도입니다. 시장의 패닉을 일시적으로 멈추는 안전장치인데, 그 장치가 발동될 만큼 시장이 무너졌다는 건 투자자들이 얼마나 공포에 휩쓸렸는지를 보여줍니다.

문제는 그 공포 속에서 판 사람들이었습니다. 며칠 뒤 시장이 진정되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많은 개미투자자들이 손실을 확정짓고 나온 상태였습니다. 제가 직접 겪은 일이 아니었어도, 주변의 모습을 보면서 그 고통이 얼마나 뼈아픈 것인지는 충분히 느꼈습니다.

역사를 좀 더 넓게 펼쳐보면 이 패턴은 반복됩니다. 1970년대 중동 전쟁으로 촉발된 오일쇼크 당시 미국 증시는 1974년까지 하락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6년 동안 오히려 이전보다 더 크게 올랐습니다. 방산주가 먼저 뛰었고, 오일달러를 쥔 중동 국가들의 대규모 건설 수요에 건설주가 따라 올랐으며, 거기에 더해 인텔로 대표되는 컴퓨터 산업이 싹을 틔웠습니다. 전쟁이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은 미국의 대공황을 끝낸 계기가 됐고, 한국전쟁은 패망한 일본이 다시 일어서는 발판이 됐으며, 베트남전은 간접적으로 한국 제조업 성장의 씨앗이 됐습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미국-이란 전쟁, 그리고 여전히 진행 중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이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격이 비싸 보인다고 밸류에이션이 비싼 건 아닙니다

이번 전쟁 국면에서 국내 증시가 유독 크게 흔들린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트럼프발 불확실성이고, 다른 하나는 시장에 새로 진입한 초보 투자자들이 ETF를 통해 양방향으로 급격하게 반응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ETF(상장지수펀드)란, 특정 지수나 자산군을 추종하는 여러 종목이 묶인 상품으로 주식처럼 실시간 거래가 가능합니다. ETF를 팔면 구성 종목 전체가 동시에 매도 압력을 받고, 반대로 사면 전체가 오르는 구조입니다. 개별 종목을 고르는 수고 없이 투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공포 심리가 폭발할 때 낙폭도 한꺼번에 증폭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사이드카(Sidecar) 제도도 같은 맥락입니다. 선물 시장의 가격 변동이 기준치를 넘어설 때 주식 매수·매도 호가 효력을 5분간 중단하는 제도인데, 매도와 매수 사이드카가 며칠 사이에 번갈아 발동됐다는 건 그만큼 시장 참여자들이 극단적으로 반응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그 공포 속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내려갔다고 해서 기업의 실력까지 줄어든 건 아닙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가격과 가치는 다른 개념입니다. 밸류에이션(Valuation)이란 기업이 벌어들이는 이익 대비 현재 주가가 얼마나 싸거나 비싼지를 평가하는 것입니다.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해 연간 이익이 40조 원 초반이었는데, 최근 분기에만 57조 원을 넘는 이익이 나왔습니다. 고대역폭메모리(HBM)와 AI 수요 폭증으로 인해 메모리 반도체 고정 가격이 한 달에 50%씩 오르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고정 가격이란, 제조사와 구매자가 일정 기간 동안 변동 없이 거래하기로 합의한 납품 단가를 의미합니다. 스팟 가격과 달리 수요와 공급보다는 협상력에 의해 결정되는데, 이 가격이 달마다 크게 오른다는 건 공급보다 수요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신호입니다. 모건스탠리 등 해외 증권사들은 이 수급 불균형이 최소 2030년까지는 해소되기 어렵다는 보고서를 내놓고 있습니다(출처: Morgan Stanley Research). 이렇게 보면 주가가 오른 것처럼 보여도, 이익 성장 속도가 주가 상승 속도를 앞지르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밸류에이션은 오히려 저평가 구간일 수 있습니다.

이번 전쟁이 AI 산업의 방향 자체를 꺾지는 않았습니다. AI는 미국에게 중국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핵심 무기입니다. 이 흐름이 바뀌지 않는 한, 강세장의 본질은 유지된다고 봐야 합니다.

이번 전쟁이 열어준 한국 시장의 실전 투자 포인트

전쟁이 터지면 무조건 팔고 피해야 한다는 생각, 저도 젊은 시절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판단이 얼마나 많은 기회를 날린 선택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전쟁 국면에서도 개미투자자들이 참고할 수 있는 포인트들이 있습니다.

이번 전쟁에서 한국이 얻은 특수 효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방산: 천궁 등 한국산 무기체계가 실전에서 96% 이상의 명중률을 기록하며 신뢰도를 증명했고, 미국의 재고 소진으로 유럽·중동의 주문이 한국으로 집중되고 있습니다.
  • 반도체: HBM과 메모리 고정 가격 급등이 지속되면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분기 이익이 역대급 수준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 MSCI 선진국 지수 편입 기대감: 국내 증시가 선진국 지수에 편입될 경우, 신흥국보다 훨씬 큰 자금 풀에서 외국인 자금이 유입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국내 방산 섹터의 경우, 한국항공우주산업(KAI), LIG넥스원,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노르웨이는 이미 미국에 발주했던 무기 주문을 한국으로 돌린 사례가 나왔습니다(출처: KDB미래전략연구소). 미국이 나토와 갈등을 키우고, 자국 무기 재고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방산이 반사이익을 얻는 구조는 꽤 오래 지속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반도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삼성전자는 현재 메모리 공급을 지렛대로 비메모리(파운드리) 수주까지 확대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파운드리란 고객사가 설계한 칩을 대신 생산해주는 위탁 제조 사업을 의미합니다. TSMC가 독점에 가깝게 장악하던 시장에서 삼성이 메모리 공급력을 활용해 비메모리까지 영역을 넓힌다면, 장기적인 재평가 여지가 충분히 있습니다.

발 빠르게 사고팔면서 단기 수익을 노리는 건 경험 많은 전문가도 어려운 일입니다. 정치 변수처럼 예측 불가능한 이슈에 반응할수록 손실만 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트렌드의 방향을 잡고, 조정이 올 때마다 조금씩 더 담는 전략이 개인 투자자에게는 훨씬 유효합니다.

911 테러 당시 공포 속에서 버티지 못하고 나온 사람들이 결국 가장 싼 가격에 팔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봅니다. 단기 등락에 흔들리지 말고, 기업이 실제로 얼마를 버는지, 그리고 그 이익이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는 구조인지를 먼저 보시길 권합니다. 중장기적 시각으로 접근한다면, 지금 이 불안한 시장도 결국 기회의 구간이 될 수 있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실제 투자 결정은 반드시 본인의 판단과 책임 하에 진행하시기 바랍니다.


참고: https://youtu.be/lm2URqHD1nY?si=tZ_pu1GF-sNUDzU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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