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정말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에 주변에서 "이 코인 상장만 되면 10배는 기본"이라는 말을 귀에 딱지 앉도록 들었습니다. 저도 그때 솔깃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 미국에서 진행 중인 스테이블 코인 법제화 논의를 보면서, 그 시절 무분별했던 코인 난립 사태가 자꾸 떠오르는 건 저만의 생각은 아닐 겁니다. 미국의 클래리티 법안과 패리티 법안, 두 축이 어떻게 정리되느냐에 따라 전 세계 크립토 시장의 판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 이 흐름은 그냥 지나치기가 어렵습니다.

클래리티 법안: 달러 패권과 스테이블 코인의 연결고리
미국이 이렇게 스테이블 코인 법제화에 속도를 내는 이유는 단순히 암호화폐 시장을 키우겠다는 게 아닙니다. 핵심은 달러 기축 통화 체제를 지키는 것입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의 해외 자산 약 2천억 달러가 한꺼번에 동결되는 사태를 목격한 전 세계 중앙은행들은 달러 자산 비중을 더 이상 늘리지 않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미국 재무부의 국채 발행 속도는 오히려 빨라지고 있는데, 10년물·30년물 같은 장기채에 대한 해외 수요는 약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장기채란 만기가 10년 이상인 국채를 뜻하며, 금리 변동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불확실한 시기에는 매수 수요가 빠르게 빠집니다.
바로 이 공백을 테더(USDT)와 서클(USDC) 같은 스테이블 코인 발행사들이 메우고 있습니다. 스테이블 코인이란 달러 같은 법정화폐와 1대 1로 가치를 연동시킨 디지털 자산입니다. 테더는 현재 한국 정부보다 더 많은 미국채를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국채 수요의 새로운 축이 되었습니다. 스테이블 코인 발행사들이 달러를 받고 토큰을 발행한 뒤, 그 달러를 단기 국채에 투자하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클래리티 법안은 이러한 스테이블 코인 발행 시장에 관한 법적 틀을 마련하는 법안입니다. 발행사가 갖춰야 할 준비금 요건, 빅테크 기업의 단독 발행 금지, 은행 차터(뱅크 차터, 즉 금융기관 허가증)를 가진 기관과의 조인트 벤처 의무 등을 규정합니다. 현재 7부 능선까지 왔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고, 5월 내 통과를 목표로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출처: 미국 상원 은행위원회).
그런데 여기서 가장 큰 충돌 지점이 이자 지급 허용 여부입니다. 코인베이스는 스테이블 코인을 거래소에 예치하면 연 3.5% 수준의 이자를 지급하는 상품을 원합니다. 발행사가 단기 국채 투자로 연 4% 이상을 버는 만큼 일부를 고객에게 돌려주겠다는 논리입니다. 반면 미국 은행권은 결사 반대입니다. 예금을 받고 이자를 지급하는 것은 전통적으로 은행만의 고유 권한이었기 때문입니다. 0.1~1% 수준의 예금 금리를 주고 있는 지방 은행들 입장에서, 3.5%를 주는 스테이블 코인 상품이 등장하면 뱅크런(은행에서 예금이 급격히 빠져나가는 사태)이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클래리티 법안이 다루는 핵심 쟁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스테이블 코인 발행사의 1대 1 준비금 요건 (단기 국채 등 안전자산)
- 이자 지급 허용 여부 (크립토 업계 vs. 은행권의 최대 충돌점)
- 빅테크 기업의 단독 발행 금지 및 금융기관 조인트 벤처 의무
- 유통 시장 투자자 보호 조항 부재 문제
제가 직접 겪어보니, 2017~2019년 당시 검증도 안 된 코인들이 거래소에 상장만 되면 초기 투자자들이 수익을 챙기고 떠나는 패턴이 반복됐습니다. 유통 시장 보호 조항이 빠진 클래리티 법안이 그대로 통과된다면, 이번엔 더 세련된 방식으로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걱정이 드는 건 이 때문입니다.
패리티 법안과 투자자 보호: 역사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패리티 법안은 클래리티 법안이 전혀 다루지 않은 과세 체계를 정비하는 법안입니다. 현재 미국에서 스테이블 코인은 화폐가 아닌 자산으로 분류되어 있어, 취득 시점과 사용 시점 사이에 단 0.1달러라도 가격 차이가 생기면 양도세 신고 대상이 됩니다. 양도세(Capital Gains Tax)란 자산을 처분했을 때 발생하는 차익에 부과하는 세금으로, 결제 수단으로 스테이블 코인을 쓸 때마다 이 과세 이벤트가 발생한다는 뜻입니다.
커피 한 잔 사 먹을 때마다 세금 신고 의무가 생긴다는 건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됩니다. 연간 수천~수만 건의 결제 내역을 전부 신고하려면 세금 신고서가 700페이지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가 과장이 아닙니다. 패리티 법안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액 결제(약 200달러 이하) 과세 면제와, 스테이킹 이자에 대한 최대 5년 과세 유예를 논의 중입니다. 스테이킹이란 보유한 코인을 네트워크 검증에 활용하고 그 대가로 이자를 받는 구조입니다.
다만 비트코인 채굴 보상에 대한 과세 유예는 아직 포함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작업증명(PoW) 방식, 즉 컴퓨팅 파워를 소모해 블록을 생성하는 비트코인 채굴이 탄소 배출을 증가시킨다는 워싱턴 정가의 인식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비트코인 전기소비 지수 연구에 따르면, 미국 내 비트코인 채굴의 친환경 전력 사용 비율은 이미 50%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케임브리지 대안 금융 센터). 미국의 상장 채굴 기업들이 투명하게 친환경 채굴을 홍보하고 있는 상황에서, 스테이킹 이자에만 과세 유예를 적용하고 채굴 보상을 배제하는 것은 이중잣대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솔직히 이 부분이 가장 걱정됩니다. 규제가 마련된다는 것 자체는 좋습니다. 하지만 스테이블 코인 발행이 사실상 화폐 발행 권한을 민간 기업에 부여하는 것과 다름없는 만큼, 초반에는 법규를 잘 지키더라도 유동성 위기가 터지는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2022년 테라·루나 사태를 직접 목격한 입장에서, 당시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이 순식간에 붕괴하면서 수십조 원의 피해가 발생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때와 다른 점은 이번엔 법적 테두리 안에서 훨씬 많은 자금이 움직인다는 것이고, 그 피해 규모도 비교할 수 없이 커질 수 있습니다.
클래리티 법안이 통과될 경우 가장 큰 수혜를 볼 곳은 테더, 서클, 페이팔, 메타, 로빈후드 같은 스테이블 코인 발행 준비 기업들입니다. 반면 법안이 무산되면 USDC를 발행 중인 서클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서클은 미국 규제 관할권 내에서 사업 중인 만큼, 규제 명확성 없이는 사업 확장 자체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모든 논의의 출발점은 하나입니다. 누가 피해를 입느냐의 문제입니다. 저는 제2의 테라·루나 사태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클래리티 법안에 유통 시장 투자자 보호 조항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법제화가 빠른 것보다 제대로 된 것이 더 중요하고, 그게 결국 스테이블 코인 시장이 장기적으로 살아남는 길이기도 합니다. 규제 명확성이 기관 자금을 끌어들이는 힘이 된다는 건 맞지만, 그 이전에 일반 투자자를 지킬 안전망이 먼저 깔려야 합니다. 앞으로 5월까지의 입법 진행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어떤 조항이 들어오고 빠지는지 꼼꼼히 확인해 보시길 권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금융 또는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가상자산 투자는 원금 손실 위험이 있으며, 투자 결정은 반드시 본인의 판단과 책임 하에 이루어져야 합니다.